@P201
예수님은 "예"라고 대답하셨다.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로리브 위드머이다. 그녀는 멕시코의 한
목장에서 살고 있으며, 열세 명와 자녀를 두었고, 빛나는 푸른 눈과 백만 달러짜리 미소를 가지고
있다. 로리브는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에 관한 한 가지 원칙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첫 남편과
사별한 후 지그프리드라는 남자와 재혼하였는데 그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였다. 재혼 초기에
그녀는 남편의 촉박한 일정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는 "2시간 안에 나와
함께 멕시코 시티에 갈 수 있소?"라고 묻곤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예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그녀는 남편이 일하는 데 열세 명의 자녀가 방해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쓰며 아이들을
양육했다. "남편은 예술적 감각이 있었어요. 나는 남편의 그런 감각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무엇을 요구하든 곧 "예"라고 대답했다. 지금 그녀는 한 회사의
부회장인데, 그녀가 남편에게 자신의 사업여행에 같이 가자고 제의하면 남편 또한 흔쾌히 응하곤
한다.
@P201
예수님은 "예"라고 말씀하셨다. "예, 나는 당신에게 나의 집을 보여 주겠습니다. " "예, 나는
당신의 장모를 만나겠습니다." "예, 나는 당신의 딸을 치료하겠습니다" "예, 나는 당신이 요청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내가 목사나 사회사업가가 되지 않고 사업에 뛰어든 것은 목사나 사회사업가의 삶에 산적해
있는 "예"라는 대답 때문이었다. 사업에서는 좀더 자유롭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오. 지금 당장은 당신을 볼 수 없어요. 약속이 있거든요." 늘 이런 '사업상' 이라는
핑계 때문에 나의 친구들은, 내가 어떤 사업 모임이나 책임자회의 등을 주재한다면 병원에 있는
환자라도 택시에 태워서 데려오는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그러나 로리브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나는 좀더 자주 "예"라고 말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바로 어젯밤의
일이다. 나는 이웃집으로부터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막 방영하기 시작했고, 읽어야 할 책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마침 그때
전화가 울린 것이다. 옆집에 사는 여든네 살의 할머니, 샐리였다. "로리, 당신이 기르는 고양이를
빌려 줄 수 있겠어요? 내 손녀가 고양이를 보고 싶어해." 나는 샐리가 3년 전부터 손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갈등했다. 이미 밤 10시가 넘었고, 이렇게 집에 앉아 쉬고 있는 것도 2주일 만에
처음이었다. 나는 샐리의 손녀에게 고양이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는 다음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P203
그리고 그 손녀는 분명히 전에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등뒤에서
로리브가 미소지으며 "예" 하고 대답하라고 재촉하는 듯한 환영을 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이리 와라, 톰." 고양이를 불렀다. "자, 우린 오늘 특별한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한단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래" 나는 내
마음이 웃고 있다고 느꼈다. "예" "예" 예수님께서는 "예"라고 대답하셨다.
Question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요청에 "예"라고 대답해 보십시오.
어떤 요청에 진심으로 "예"라고 대답하며 기뻤던 적이 있습니까?
유쾌하게, 믿음이 가도록, 즐겁게, 더 자주 "예"'라는 말을 하십시오, (세상은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아니오"란 대답을 충분히 들어 왔습니다.)
@P204
예수님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셨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 Lawrence of Aysibia)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로렌스의 군대가
사막을 가로질러 열흘간 행군하는 장면이다.
식수가 떨어져서 거의 죽을 지경으로 휘청거리며 걷고있던 부대원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하였고,
모두들 정신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로렌스는 사람 수를 헤아리다가 낙타를 탄 소년이
없음을 알았다. 낙타는 캠프 뒤에서 발견되었으나, 소년은 타고 있지 않았다.
로렌스는 부하들을 급히 불러 "우리는 돌아가서 그 소년을 찾아야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 끔찍한 용광로 같은 사막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년이 우리와
함께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알라의 뜻입니다. 그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서 기록됩니다. 우리가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며 애원했다.
@P205
화가 난 로렌스는 혼자 낙타에 올라탔고, 다시 모래사막을 향하여 출발했다 남은 부하들은
머리를 흔들며 "이제 우리는 대장도 잃게 되었다"고 체념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뜨거운 사막 열기의 파도 너머 무언가 움직이는 형상이 나타났다. "로렌스다. 그가
소년을 찾아 냈다. " 병사들은 소리 지르며 로렌스를 도와 주기 위해 달려갔다. 로렌스는
휘청거리며 소년을 그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하라! 당신들이 운명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는다." 당신이나 내가
운명을 기록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당신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어떤 종교적 강령에 의하면, 만약에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하라고 말씀하셨을 거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으셨고, 그의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청구하라고 격려하셨고, 그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하라고
고취하셨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태복음 7:7~10)
@P206
성경의 전체적인 정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자신의 열망을 자녀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시는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에 관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창세기 2:19)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 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요한복음 11:42) 사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상호협동적인 창조적 모험사업(a
cooperative creative venture)을 간절히 바라는, 신성한 열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이디어들을 찾고 계시며, 우리의 아이디어들에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계신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이디어에 그렇듯 개방적이시라면, 오메가 리더 또한 마땅히 그의
사람들이나 그들의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삶이란 곧 상호창조와 교제에 대한 것이다. 경청하면서 대답하는 리더들에 의한 상호창조와
교제보다, 더 그것을 잘 나타내 주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저술가이자 강사이면서 동시에 컨설턴트인 톰 피터스는 가장 최근에 발표된 혁신적인 발명의
75%는 그 전문분야 밖의 사람들로부터 나왔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애플컴퓨터는 한 '어린이'
(스티브 잡스) 의 차고에서 탄생했다. 그 어린이는 '커다란 소년들' (IBM, 휴렛팩커드 등)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떠났던 어린이이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그들의 아이디어들에 개방적이셨다.
@P207
Question
당신이 최근에 당신 스태프의 아이디어를 들은 것은 언제입니까?
당신이 최근에 당신 스태프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은 언제입니까?
당신은 모든 훌륭한 아이디어가 꼭 당신에게서만 나와야 한다고 믿습니까?
@P208
예수님은 여성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부여하셨다
불행하게도, 여성들은 전세계 수많은 조직의 리더쉽과 관리자 역할에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여성들의 재정적, 영적 그리고 물리적인 공헌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교회와 여타의 회사들에서 오히려 더욱 그렇다. 너무나 많은 조직들이
아직도 여성들의 에너지와 재능을 인식하여 인정하거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조직들은 여전히 여성들이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다르게 느끼셨다. 예수님이 부활 후 가장 먼저 나타나신 것은
여자들에게였으며, 그 여자들에게였으며, 그 여자들의 사명은 보다 의심이 많은
제자들(남자들)에게 가서 그들을 확산시키는 것이었다.(마태복음28:9~10)
@P209
제자들 중의 하나인 의심 많은 도마는 "나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했다(요한복음 20:25)
하나님은 적당한 시기까지 비밀을 고수할 수 있는 처녀인 마리아에게 엄청난 계획에 대하여
최초로 말씀하셨다. 그렇게 복음의 처음과 마지막에, 하나님은 여성들에게 주요한 리더십의
역할을 담당시키셨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기를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을 도왔다.
부유한 여성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시는 동안 자기네 재산을 바쳐 그들을
도왔다. (누가복음 1:26~35, 8:3)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최초로 예수님의 부활의 기적을
인정한 사람이었다. (마태복음 28:1~10)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남성들)과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시면서 여러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복음 24:13-~35)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거의 즉시 알아보았다.
몇 명의 남성들은, 만약 더 많은 여성들이 쓸모가 있게 된다면 자신들도 더욱 많은 여성들을
승진시킬 것이라고 나에게 의견을 말한 바있다. 물론이다. 여성들은 쓸모가 있다. 여성들은
요즈음 새로 창업되는 사업의 55%를 소유하거나 경영한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일반적으로
오래 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남성들의 재산을 관리한다 여성들의 아이디어와 방법들이,
우리가 봉사하고 리드하기 시작하는 나라들이나 회사들, 교회들 그리고 전문분야들 속에서
혁명을 일으키고있다. 예를 들어 의료분야를 생각해 보자. 최근 여성들은 간호직을 떠나 의사직에
가담하고 있다.
@P210
요즈음 의과대학 학생 가운데 40%정도가 여학생이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의사에게
가장 많이 요구되는 첫번째 자질은 '여성성'이라고 한다. 한 지역의료 소식통은 샌디에이고에
있는 대부분의 여성 의사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진술했다.
팽창하고 있는 여성의 에너지를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기를 거부하는 남성들은 종종 자신의
오만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는다. 예를 들어,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는 그녀의 남편이 예수님을
못박는 일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려고 애를 썼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왔습니다' 하고 그의 남편에게 전갈을 보내 당부하였다. (마태복음 27:19) 그러나
빌라도는 아내의 전갈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영장에 서명함으로써, 역사상
아무도 서고싶지 않은 위치에 남게 되었다.
상원의원인 폴 단포스의 아내는 아니타 힐 교수가 클라린스 토머스에 관해 진술한 내용의
심각성에 대하여 남편에게 경고하려고 애를 썼다. 단포스 상원의원은, 다른 남성들처럼 여성의
불평을 의미없는 것으로 일축하려고 노력했다. 잇따라 발생하는 크나큰 실패는 주로 여성들의
염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남성들에게서 기인한다. 어떤 여성 코미디언은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보내야만 했던 이유는 모세가 미리암에게 지도를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하나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하고 말슴하셨다.
(누가복음 17:21) 예수님은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힘과 권세를 위 양하셨다 예수님은
천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며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러 오셨다. (마태복음 6:9~13)
@p211
드라마 (스타 트랙 (우주여행): 다음 세대)에서, 피카드 선장은 통찰력이 있는 여성 자문역인
트로이가 그의 곁에 없으면 결코 새로운 지역에 들어서질 않았다. 종종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을 때면 다른 누구보다 먼저 그녀가 새로운 지역의 정찰대로 나섰다. 통찰력이 그의 곁에
없으면 결코 새로운 지역의 정찰대로 나섰다. 그러므로 남성들이여, 여성들에게 양보하라.
여성들을 채용하라. 그러면 당신은 더욱더 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능력을 주장하고 소유해야만 한다. 남성들이 우리 여성들 없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있다면 그것은 단 1세대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여성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부여하셨다.
Question
당신의 조직, 회사나 교회에서 최고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여성의 비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위 질문의 대답으로 나온 비율을 전체 구성원 수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얼마나 많은 수의
여성들이 당신의 조직, 회사나 교회에서 일하거나 봉사합니까?
만약에 그 비율이 대표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P212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투명하셨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마태복음
17: 2, 마가복음 9: 2~3, 누가복음 9: 29)말씀에 의하면,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마태복음 17: 2)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광경은 불가사의한 천국의 본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아울러 중요한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숨길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투명해지면서 빛이 나셨다. 예수님은
어떤 숨겨진 의제들이나 은밀한 주머니들을 가지지 않으셨다.
어떤 상황의 여러 국면을 은폐하려는 것에는 "내가 너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비록 은폐의 목표가 방어하기 위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건방진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태도는 분개와 보복을 낳게 된다
@P213
이란-콘트라 스캔들 이 문제가 되었을 때, 검사들은 어떤 일이 자행되었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범죄자들이 그것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잘못을 감추고 잘될 리 없다. 제 잘못을 실토하고 손을 떼어야 동정을 산다. " (잠언 28: 13)
리더로서 당신은, 당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스태프들은 처리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당신 자신을 상아탑 안에 은둔시켜서는 안 된다. 그 사건들이 회사에 대한
것이든지 아니면 당신 자신에 대한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바바라 부시 Barbara Bush는 그녀의 주름살을 숨기지 않고 자유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대중은
그녀를 존경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보석으로 덮어 버리려고 애쓰는 주름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사건들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서로 공유하게 되면 우리는 좀더
남들과 같아지게 된다. 우리가 그들과 같아 보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우리를 더욱
좋아하게 된다.
작가이며 연사인 안토니 로빈스는 생면부지인 사람들간의 결속을 형성하는 '흉내의 힘'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당신이 단순히 상대와 비슷한 태도와 표현을 취하기만 해도, 당신의
태도와 철학이 어떠하든지간에, 사람들은 당신과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그는 말한다.
'동료압력(peer pressure)'은 흉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사실은 남들과 같다'는 신호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의 환영)은 남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는 방법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사랑을 원하는 '환영 (the Phantom)'은 각종 곡예와 커다란 풍금연대, 연기(smoke) 그리고 다른
부정적인 특수한 효과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P214
그는 자신의 진실한 재능을 파괴해가며 가면을 쓰고 지하에서 살아간다. 그 결과, '환영' 이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그를 잡으려고 한다.
가면을 벗었을 때 비로소 그는 사랑스러운 크리스틴으로부터 진실하고도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게 된다
당신도 '환영'처럼, 반쯤 가면을 쓰고 문을 걸어 잠그고 연기로 가득찬 방에서 속삭이면서
일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보다 투명한가? 사람들은 진실을 논할 수 있으며,
사실 사람들은 벌써 진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공개되었을 때
비로소 진실한 사랑과 학습이 시작된다.
예수님은 그의 눈물이나 두려움을 숨기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투명하셨다.
Question
당신이 당신의 스태프들에게 숨기고자 애쓰고 있는 사건이나 상황은 무엇입니까?
투명한 리더가 되지 못하도록 당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은 무엇입니까?
@P215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뢰하셨다
예수님은 가장 진지한 젊은 제자 시몬 베드로를 바라보시면서,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 18)
'시몬'의 의미는 하나의 박편(the Flaky One)'인 반면에 '베드로는 반석을 의미한다. 확실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셨음에 틀림없다. 베드로에 관한 기록을 보면 그는
성급한 젊은이로서,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것의 기반으로 선포할 만한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두려웠기 때문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을 막으려고 어리석은 계책을
썼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3년 동안 사랑과 용서에 대한 설교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의 귀를 쳐서 잘라 버렸다. (마태복음 26: 51)
@P216
그리고 결국에는 예수님이 재판정에 끌려가셨을 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마태복음 26: 69~75) 예수님은 베드로가 그런 사람임을 자세히 알고 계셨지만 그를 '나의 반석'
이라고 부르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뢰 하셔야만 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수많은 밤을 편안히
주무시지 못하셨을 것이다. 제자들의 배경은 영광스럽지 못했고,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천국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놓고서 계속하여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할
때 그들은 꾸벅꾸벅 졸면서 예수님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역할 사람들로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심지어
상치되는 증거들이 명백히 있을 때에도 그들 각자에게서 최상의 것만을 생생하게 마음 속에
그리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위대함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위대할 이라는 주물을 그들에게
부으셨고, 결국 제자들은 위대함으로 충만하게 되어 살아갈 수 있었다.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내적인 지식일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갈망과 그의 번민 그리고 그의 두려움을 제자들과 함께
자유롭게 나누셨다. 만약에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신뢰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나 자매로 부를 수 없으셨을 것이며, 자신과 함께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지도 못하셨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진실로 신뢰하는 어떤 사람이 있을 때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P217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내면적으로는 누구인가' 를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을 참으로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가 스스로 깨닫고
있으면서도 내세우길 주저하는, 우리의 탁월함을 인정해 주는 어떤 사람을 그토록 절실히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드로는 예전에는 복음을 천하기를 피했던 이방인들에게로, 마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처럼, 복음을 들고 나아갔다. (사도행전서: 1~18) 예전에는 어떤 전도자나 선지자도 그러한
복음을 들고 '부정한(unclean)' 이방인들에게로 가도록 부름을 받지 못했다. 베드로도 논란이
되었던 그의 사역으로 인하여 최후에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경의를
표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요청이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자들이 '하나의 박편' 이라고 불렀던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우리가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 우리를 신뢰하게 되면 우리의 위대함은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다. 베드로에게는 확실히 그러한 것이 작용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신뢰하셨다.
Question
당신이 베드로처럼 '박편'으로 간주해 온 것들에 대하여 지금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새로운 통찰들을 기술해 보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스태프들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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