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2
예수님은 계획관리 내에 존재하는 사랑을 보셨다
다윗 왕은 시인이자 운동선수였고, 무용수이자 목자였으며, 역전의 용사이자 가수이며
음악가였다. 그는 열정의 화신이었다.
다윗에 관한 이야기 하나가 특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중의 지지도가 최악이었을 때.
시므이(사울의 친척)가 다윗을 저주하면서 그를 향하여 돌팔매 질을 하였다. 화가 난 충성스런
다원의 군인들은 즉시 시므이의 목을 자르기를 원했으나, 다원은 "야훼께서 나를 욕하라고 저
사람을 보내신 것이라면 내가 어찌 감히 왜 이러시느냐고 하겠소?'라고 말했다. (사무엘하 16:
10) 이러한 반응은 놀랍다. 왜냐하면 시편에서 보이는 다원은 때때로 맹렬한 복수의 욕망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거절했다. 그는 사울 왕이 비록 이성을
잃고 명백하게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지라도 사울왕을 '하나님께서 기름부은자'로 불렀다.
@P83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를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때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낸 자였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투옥시킬 때, 예수님은 "네가 하늘에서 권한을 받지 않았다면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9: 10~11) 예수님은 병사들과 그들의
심문까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의 일부로 보셨다. 다윗과 예수님은 정신적으로, 불의를 보다
크고 사랑스러운 계획의 일부분으로 수용하고 통합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에게도 궂은 일은 생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불공정하게 보이는 하나의
투쟁이다. 저술가이면서 목사인 테리 콜 휘테커 Terry Cole Whitakerr는 단 밀맨 Dan
Millman에서 "우리는 그것이 좋다, 나쁘다 라고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종마를 사들였다. 그의 모든 친구들은 "그것 참 훌륭한데"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 종마는 도망을 쳤고, 모든 친구들은 "그것 참 안됐군" 하고 말했다. 2주일 후에 그
종마는 한 무리의 암말을 끌고 돌아왔다 그의 친구들은 "그것 참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의 아들이 종마에 올라탔다가 말잔등에서 떨어져서 어깨뼈가 부러졌다. 친구들은 "그것 참
안됐군' 하고 말했다. 다음 달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 소년은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전쟁에 갈 수
없었다. 친구들은 "그것 참 좋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모든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데도, 이야기는 사건들을
그때그때 좋다, 나쁘다 라고 판단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행된다. 악으로부터 선을 분류하려고
노력하고, 쉴새없이 상황이 변화되는 사건들에 표지를 붙이는 일이 리더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
@P84
그러나 다윗은 모욕을 참을 수 있었으며, 예수님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삶과 사역이
해명되는 것처럼 보일 때 침묵을 지키셨다 예수님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수행하셨다
나머지는 보다 더 크고 높은 손에 있었다. 예수님은 사랑이 계획의 통제 안에 있다는 것을
믿었고 알고 계셨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라고
말했다.
시편 139장에서 다윗은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의심과 환난 중에도,
그는 또한 자신의 영혼에 아름다운 노래를 썼다. 나는 일들이 뒤틀려 가는 것처럼 보일 때
스스로 그 노래를 되뇌인다.
야훼께서 나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고,
조목조목 잘 지켜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나의 왕실이 어찌 흔들리랴?
하나님께서 나를 좋아하시어 번번히 구해 주셨는데,
나의 왕실이 어찌 번성하지 않으랴?(사무엘하 23: 5)
이것도 역시 예수님의 삶의 철학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그의 유일한 근원으로 보셨으며. 계획관리 내에 존재하는 사랑을 보셨다.
@P85
Question
당신의 삶에서, 지금 당장에는 나쁘지만 앞으로 좋게 바뀔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과거에 '나쁜' 상황으로부터 기인되었던 좋은 일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크거나 작은 일들이 잘못되어 갈 때 당신은 누구를 비난하게 됩니까?
예수님은 누구를 비난하셨습니까?
@P86
예수님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은 두려워하셨다.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제자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정원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두려움과 싸웠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단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을 것이다
수년 전 내가 일일 담센터에서 일할 때, 조그마한 소녀가 나를 올려다 보면서 "와! 당신은
대단히 크네요'라고 말했다. "응, 그래." 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너도 이담에 자라면 클거야."
소녀는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나는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는 그의 삶에서 고통스럽고도 소름끼
치는 사건들을 직면해야만 했다.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수잔 제퍼스 Susan Jeffers박사는 (두려움을 느껴라.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행하라)라는
대단한 책을 펴냈다.
@P87
그녀는 항상 우리가 두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만약에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두려움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결코 시작조차 못할 것이다.
잠언에서는 밭을 경작하기 위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농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늘의 어디엔가는 항상 구름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훈련받은 자들은 하늘이 흐려 있더라도 구름을 보게 될 것이다. 완벽한 시기를 기다리는 것은
현재 당신이 처해 있는 위치에 안주하려고 하는 데 대한 구실이나 합리화로 작용된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미래지향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임을
아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도 이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그의 사형집행관들에게 자신의 정체(identity)를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을
느꼈으며 땀이 피가 될 때까지 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황을 돌파하셨다. 비록 예수님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것을 대면하셨다.
두려움은 우리들 삶에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수년 전에 시각화훈련을 통하여 여성의사
집단을 지도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 각화훈련에서는 한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서 방을 가로질러 반지를 가져다가, 그것을 육중하게 보호한 성배 안에 넣는
역할을 맡았다. 다른 두 명의 여성은 그 주인공의 '두려움' 이 되기로 했다. 규칙에 의해서,
두려움은 결코 주인공을 접촉할 수 없지만 주인공이 반지를 성배 안에 넣지 못하도록 그 외의
모든 방법을 동원할 수 있었다.
@P88
두려움들은 소리를 지르고 야유했으며, 팔을 휘두르고 그녀가 성배를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자행했으나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두려움들은 심지어는 그녀가
성배에 반지를 떨어뜨릴 때에도 시끄러운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녀의 정신을 혼란시키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도망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역을 감당하셨다.
Question
당신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두러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기다
릴 수 있습니까?
@P89
예수님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예리하게 파악하셨다
예수님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은 손에 있는 것을 취하여 에너지와 우주의 원리 - 그가
우리들에게도 활용가능하다고 말한 똑같은 에너지와 우주의 원리 - 를 자유로이 투사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창조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의 창조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성경의 이야기는 한제자가 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여 겪는 고통을 예수님에게 호소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불쑥 그에게 바다에 가서 낚싯대를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그는 입에 동전이 들어 있는 고기를 발견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을 꺼내서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 내어라."(마태복음 17: 27)
또 다른 때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귀를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라고 말하고 그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마태복음 21.2)
@P90
그리고 다른 때에는 하나의 빵덩어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다.
예수님의 창조적인 능력은, 믿음의 에너지와 자신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자원들에 대한 예리한
파악에서 기인된 것일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우주먼지의 구름 속에서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는
신앙을 가진 육신인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탄생하셨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원들을 알고 계신다.
나는 종종 나의 고객들에게 그들이 가진 자원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금전은 가장 중요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상기시킨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자원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조 지라드 Joe Girard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판매사원 The Greatest Salesman of All Time>
이라는 책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는 250이라는 숫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그가 만난 사람들은 각자 250명의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그의
친구나 고객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을 알기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중요하다. 언젠가는 그들의 기술이나 재능 혹은
친구나 친척들이 당신에게 말할 수 없이 귀중하게 활용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수첩을
유일한 자원으로 인식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얻기보다는 매번 전화번호부를
훑어보게 될 것이다.
어떤 젊은 의사가 스포츠의료기술을 요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수천
달러를 들여서 2주에 걸쳐 신문에 광고를 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접수계원에게 자신이 사업수완이 없음을 하소연하자 그녀는 당장 "나의 남편이
이 지역 조깅협회장이에요. 다음 주에 그들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지 않으실래요?"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바로 그것을 찾고 있던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이 그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의 병원은 그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그들이 아는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의 자원들을 속속들이 알고 계셨다.
Question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모든 자원을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스태프들이 알고 있는 '250명의 지기'중에서 몇 명 정도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얼마나 자주 당신의 롤로텍스(Rolodex;인명록)에 있는 자원들을 갱신하고 검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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