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예수

[스크랩] @P185부터

거룩한씨 성동 2006. 8. 28. 18:47
 

@P185

예수님은 반전의 전문가이셨다

예수님이 자신이 처한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하셨던 일은 그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일은 예수님의 특기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잊어버렸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도록 하자." "어린 소녀가 죽어가고 있다. 살려내자" 사람들이 성전을 모독하고 있다. 성전을

거룩한 기도의 장소로 복구시키자

만약에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예수님의 일은 그들에게 환희와 화환을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사건을 반전시키신 일에 관한 기록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예수님은 어려운 일을

고찰하시고서 "그래, 정치적으로는 내가 바로 이 흐름을 타는게 현명하지 라고 말씀하실

사치스러운 여유가 없기도 했고, 여유를 가지지도 않으셨다. 사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마태복음 10: 34)

@P186

처한 상황마다 예수님의 반전기법은 달랐다. 예수님은 정해진 방식을 따르지 않으셨다. 만약

예수님이 그러한 정해진 방식을 가지셨다면, 소경을 위해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고 말씀하신" 그 치료법은 아마 오늘날에도

우편 카탈로그(direct mail)를 통하여 거래되고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정한 방식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 - 반전사고방식-을 주러 오셨다.

사실, '회개' 라는 단어는 '반전하다(turnaround: 180도로 돌다)' 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각자 반전의 전문가로 부름을 받았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위하여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즐거워해야 한다. 친구 캐서린과 나는

수년 전에 노먼 빈센트 필 Nomannnentpeak박사의 동기부여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 세미나에서

필 박사는 "여러분, 여러분의 앞길에 문제가 발생하면 큰소리로 외치십시오. '반갑다, 문제야!

어디에 있었니? 나는 나의 전생애 동안 너를 위해 나를 훈련시켜 왔는데!'" 하고 말했다

사회는 반전의 전문가들로 가득차 있다 호스피스(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한 시설)의

간호원은 환자의 가족을 위로하고, 죽음에 대한 질문들에 상세하게 상담해 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서서히 사라진다. 또한 어떤 선생님은 소경이자 벙어리이며,

'정신장애자' 라고 낙인 찍힌 어린 소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그 어린 소녀는 후에 수백만

명의 사람을 고무시키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한편 어떤 젊은 부부는 입양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아이를 입양한다. 그리고 입양 당시 의기소침했던 그 어린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서서히 새롭고 반전된 이미지의 소년으로 성장한다.

@P187

의사들은 질병의 과정을 반전시킨다. 화가들은 빈 캔버스를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그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창업가들은 버려진 창고와 남루한 서점들을 사들여서 그곳을 번창하고 부산하며

생기가 넘치는 번화가로 변화시킨다. 한 여성에 의해 쓰여진 남부의 노예에 관한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 Uncle Tom's cabins은 미국을 영구히 변화시킬 남북전쟁에 불을 붙였다

우리 각자는 내부에 사건들을 반전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예수님이 우리의 코치이고

하나님이시라면, 반전시키는 능력은 바로 우리의 것이다.

예수님은 사건들을 반전시키 셨다.

Question

당신의 일터에서, 공동체에서 혹은 이 세상에서 당신은 어떤 상황이 반전되는 모습을

보고싶습니까?

당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언제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P188

예수님은 혼자가 아님을 아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잘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봐 주는 근원,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그

성스러운 근원과 지속적으로 교제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 아버지지란 말에는 가부장적인 힘과 권위의

구속력을 영속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새로운 탄생, 양육과 열정적인 경계의 현존, 창조에 대한

깊은 긍지가 내포되어 있다. 변치않은 관계, 사랑.

나는 우리 각자가자실 안에 가지고 있는 운명을 창조할 힘을 인정하는 만큼, 우리 위에서

맴돌고 계시는 자비롭고 전지전능하며 매우 친절하신 현존 한 '선'의 인격체(하나님)의 개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나는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대양 위의 단지 한 점 작은 불빛으로 나를 간주하는 어떤 거대한

중성의 대신령(Vabt Neutral Ove-rsoul) 에 의해서는 위안을 받을 수 없다.

@P189

내가 독립을 원하고 나의 날개를 펼치는 데 긍지를 갖는 것만큼, 나는 어떤 절대자가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돌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나는 언젠가 (그물)이라는 시를

썼다.

우리 모두의 아래에는 하나의 그물이 있네

때때로 우리는 춤을 추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떨어지네

그리고 거기에는 그물이 있네

우리 모두의 아래에는

예수님은 이러한 삶의 감각을 지니셨다. 그토록 암흑 같은 시기에도 열심히 일하도록 예수님을

이끌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그 열망은, 그렇듯

대단히 강렬하고 인격적인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소망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제 저녁에,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을 너는 아니?' 하고 물었다. "'자, 우리 춤을 추자'하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어. '자, 우리 춤을 추자꾸나: " 하나님은 춤추기를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과 조화를 이룬 운동, 흔들림 그리고

느낌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신다.

출처 : 하늘에속한쉼터
글쓴이 : 쉼터쥔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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