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예수

[스크랩] @P109부터

거룩한씨 성동 2006. 8. 28. 18:45
 

@P109

당신이 만약 공작을 창조했더라면 만드는 과정에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도대체 공작을 어떠한 모습으로 창조해야 하는지 난관에 부딪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당신은

바나나모양의 부리를 가진 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창조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생물학자인 내 친구 신디는 진화 과정에서 다른 종족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스스로도

성장하지 못하는 유일한 피조물이 해면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점심때 그녀는 웃으면서, 해면은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생각의 하나이거나 예술적인 죽음의 끝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도 그 계통을 통해서는 진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하나님은 창조하셨고, 창조를 해오셨으며, 현재도 창조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의 힘은 결코 중단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창조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

어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계심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말씀하신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바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언약(신약: new testament)을 주기 위하여 오셨다. 예수님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지내는 것과 늘상 있어 왔던 것에 대하여 추억을 더듬는 데 만족하지 않으셨다. 사실,

예수님은 가르침을 시작한 이후 날마다 두서너 개의 새로운 말씀을 창조하셨다. 4복음서 가운데

하나를 썼던 제자 요한은 그가 기록한 복음서의 마지막에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다

기록하면 그 기록된 책이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복음21: 25)

@P110

그는 단지 3년 동안만 예수님을 알았을 뿐인데도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예수님은 할 수 있는 모든 사역을 다 하셨다.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서 죽게 하였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5: 17) 그는 제자들에게 들판에 곡식들이 이미 꽃봉오리가 터지고 무르익어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으니 추수할 일꾼을 더 많이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도록 요구했다. 수행할 사역들이

있었으므로. 예수님은 리더로서 제자들이 그 사역들을 수행하기를 원하셨다. 그는 육신이

제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았을때 조차도 그렇게 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의 어머니와 요한을 내려다 보시면서 요한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19: 27)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나의 사역은 여기에서 끝났으나 이제부터는 당신의 사역이 시작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옮기셨다.

Question

당신은 얼마나 활동적이며 창조적입니까? 당신은 새로운 일을 진행하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해면과 같은 존재' 입니까?

당신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P111

예수님은 계획을 가지셨다

어떤 프랜차이징 컨설턴트가 "하나의 훌륭한 아이디어가 1달러의 가치를 지닌다면, 그러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계획은 1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집니다"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훌륭한 리더는 계획을 가진다. 예수님은 계획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결과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주셨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의 계획을 마음에

받아들이시고, 그 계획을 계속하여 실현시키셨다.

예수님은 어떤 것이 계획에 포함되는지 또는 포함되지 않는지를 식별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

하곤 하셨다. 예수님은 세세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지는 않으셨으나, 전체적인 청사진(the big

picture)을 확실히 염두에 두시고. 그의 내부 지침에 의거하여 하루하루 단위로 실천에 옮기셨다.

@P112

만약에 군중에게 그들의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는 건설적인 출구는 제공해 주지 않으면서

단순히 그들을 선동만 한다면 어떤 이로움이 있겠는가? 계획을 가진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자에게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린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 받은 가장 건전한 충고 가운데 하나는 당신의 일을 계획하라. 그리고

당신의 계획에 따라 일하라'였다. 나는 자신이 특별히 총명하거나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면, 내가 총명하고 용감하다고 느꼈을 때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 때때로 그 계획의

성과는 즉시 나타난다

사실, 성공한 많은 사업가들은 사업에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을 계획을 세워서 그에 따라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얼굴을 내밀지 않을 때도 그들은 나타나는데, 그들이

그렇게 모든 일에 활발하게 참석하는 것 자체가 그들 계획의 일부이다.

훌륭한 리더는 단순한 그림들(simple pictures)을 훌륭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단순히 한 무더기의 널빤지와 망치 그리고 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집이나 다른 인정할 만한 어떤 것을 짓는다고는 볼 수 없다. 때때로 리더들은

수많은 망치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게 되면 그들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망치소리는 좋아하지만 사고의 소리인 침묵은 불편해 한다.

때때로 계획은 하나의 단순한 목표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시민권리운동은 유일한 목표를

둘러싸고서 구성되었다. 때때로 시민권리는 '흑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아야 할 필요는 없다' 라는 주장과 같이 단순한 것이었다. 동등한 권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아이디어다.

@P113

사람들이 이처럼 구체적인 그림을 수반하지 않는 개념을 파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버스의 뒷좌석에만 앉아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화를 내게 하거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그림을 창출한다. 그러한 그림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하나의 계획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Question

당신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그 계획은 언제 세운 것입니까?

그 계획은 분명합니까?

그 계획은 전달될 수 있습니까?

그 계획은 실현 가능합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 계획을 실현하겠습니까?

언제 시작하겠습니까?

@P114

예수님은 팀을 결성하셨다

일단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팀을 결성하셨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갑자기 자력을 가지시게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수님께

이끌렸고, 예수님도 그들에게 이끌리셨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호수에 대고 외치셨고,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따랐다. 예수님도 혼자서는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나는 미국인들의 팀 결성 능력을 부러워하는, 다른 나라에서 온 한 신사와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룹을 만들고 업무를

할당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한 테이블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그룹을 움직이고, 그룹을 더욱

키워나가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동안 우리는 산악당(프랑스혁명 당시 의사당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과격파)의 당수 자리를 놓고 씨름하면서 그 수년을 허비했습니다.

@P115

리더나 경영자로서 당신이 어떤 중요한 일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잘못이고 곧 나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하는 존 웨인이나 수퍼우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나는 여러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 엔지니어를 만났다. 그는 아직 그의

회사를 상징할 만한 완벽한 로고(logo)를 만들지 못해 그 제품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로고와 브로슈어 제작 제품 개발 그리고 마케팅까지 모두 자신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그 자신의 빌딩에 직접 칠을 할 것이고, 그 자신의 옥수수도 직접

재배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개인주의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자신의 독특한 신념 체계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 고상한 의도, 눈부신 발명, 기적적인

발견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그것들을 실행할 팀을 결성하지 않는 한 결코 의미가 없다는 것은

진실이다. 누구이든, 최고의 아이디어를 수행할 팀을 결성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예수님은 팀을 결성하셨다.

Question

여전히 당신 혼자서 하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은 프로젝트의 어느 부분입니까? 혼자서 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P116

당신이 보수를 주는 사림과 보수를 주지 않는 사람 가운데 누가 당신의 진정한 팀원입니까?

어떤 사람이 한 팀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당신은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와 함께 그 도전에 맞서고 있습니까?

@P117

예수님은 질문을 하셨다

중역회의에서, 끝없는 제안과 토론이 끝나면 대개 누군가가 "질문하십시요"라고 말한다 그

말은 이제 주제에 대한 토론을 마치고 투표에 들어갈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대개

결정하기보다는 토론하기를 좋아한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질문하십시오."

한 여인이 곰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마침내 구석에 몰리자, 그녀는 떨면서 곰에게 물었다.

"네가 나를 죽이려느냐?' 곰은 조용히 대답했다. "저는 모릅니다, 부인. 당신이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이것은 당신의 꿈이니까요." 이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답이 주어진게 아니라 그녀 자신이 답변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진보적인 교회에서 전화 기도 상담자 훈련을 받았다.

@P118

우리 훈련생들은, 우선 상담 의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3분 정도의 시간을 주고,

그러고 나서 "좋습니다. 자, 당신은 이제 어떤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도록

훈련받았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힘에 관련된 문제에 부딪쳤을 때 금방 침묵하게 된다.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보다 흐느껴 우는 일이 훨씬 더 쉽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셨다. 왜냐하면 그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너희는

너희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너희는 무엇을 원하느냐? 너희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을

기꺼이 던질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묻고 또 물으셨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좌우명 (motto)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많은 질문을 하셨을

것이다.

진리란 항상 가장 높은 곳이나, 바로 앞이나, 또는 중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것은

미혹으로 감싸여 있고, 지하실에 숨어 있다 이러한 예로 들 수 있는 다음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들 대부분은 (벌거벗은 임금님 The Emperor's New Clothes)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작업장에서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것을 방치하면서,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모자에는 감탄하는 체한다. 즉 사람들이 지닌 문제점을 올바로 지적하지 않고

모른 체 지나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감탄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존,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아 유감이네. 자네를 괴롭히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자네 요즈음 대단히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아.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혹은"데비,

자네는 요즘 예전같이 웃지 않아. 집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P119

때때로 질문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내가 컨설턴트로 일하는 한 회사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도 이와 같은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부적당한 시기에 그리고 불행한 상황에서, 한 남자가 자신이 훈련받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그 일을 싫어했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를 고용한 그룹의 사람들도 그

남자의 부인이 죽었기 때문에 그에게 매우 동정을 느껴 역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은 더욱 팽팽해졌다.

마침내 어느 날, 중역회의에서 신임 회장이 '빌, 당신은 정말 여기 있고 싶지 않죠?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개인적인 공격이라고 생각한 빌은 완곡하게 자신을 방어했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되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빌은 그 일들 결코 좋아하지 않는데 그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빌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당연히, 사무실의 분위기는 원망과

비꼼으로 뜨거워졌다.

그러던 중 한 중역이 용기있게 나섰다. 모든 사람들이 빌을 마치 그들과 동류인 '수탉'처럼

취급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리'처럼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 중역의 명쾌한

지적을 통해 문제는 원만히 해결되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깃털을 가진 새를 찾을 수

있게 된 셈이고, 빌은 충분한 퇴직 패키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결정으로 사무실의 사기는

곧 회복되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자주 타인의 착각을 존중하게 되는가를 알고 놀란다. 아마 우리는 '거대한

가면을 벗는 것(a Grand Sking)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P120

만약에 우리들 중의 어떤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우리는 모두 우리 내면의

진실한 자아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있게 될

것인가? 자유로운 입장이다. 적어도 그것이 예수님이 믿으셨던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질문을 하셨다.

Question

현재 당신의 사무실이나 회사, 모임에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은 상황이 존재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어떠한 상황입니까?

당신이 분명하게 밝히기를 두려워했던 상황은 무엇입니까? 진실이 드러났을 때의 긍정적인 결

과들을 그려 볼 수 있습니까?

출처 : 하늘에속한쉼터
글쓴이 : 쉼터쥔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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