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P56부터
@P56
"인생은 축하할 기회들로 가득 차 있죠. 저는 그러한 기회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 열살바기 어린이가 나에게,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온 후 최초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은적이 있다 나는 "모르는데"라고 대답하며 되물었다. "그것이
무엇인데?" 아이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손을 벌려서 앞으로 뛰어오르며 " 짠!
(ta-dah!)"하고 외쳤다.
예수님은 항상 축제상태에 계셨다.
Question
당신은 무엇을 축하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지주 축하합니까?
당신은 단지 큰 일에 대해서만 축하합니까? 축하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최근, 당신의 마지막 축제는 언제였습니까?
@P57
예수님은 주인으로서 소유하셨다
주인의식(ownership)은 영구적인 소유상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일으키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심지어는 인생 자체도 단지 우리에게 대여된
것에 불과하다: . 저술가이면서 경영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 Ken Blanchard는 비전을 가진
리더들은 인생의 자원들을 자신에게 '대여된' 상태로 보는 반면, 보다 제한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은 여전히 '획득된' 상태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해인가 내 생일날, 예술가인 한 친구가 나를 위하여 놀랄 만한 것을 준비했다고 선언했다.
일몰 무렵, 그 친구는 안대로 내 두 눈을 가리고는 차에 태워 꼬불꼬불한 길을 거쳐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차를 멈추더니 안대를 풀어 주면서 서서히 눈을 떠보라고
했다. 내 앞에는 반짝거리는 작은 불빛들로 이루어 진 도시가 살아서 다가오고 있었다.
@P58
마치 하나님께서 흑암의 벨벳 바다를 가로질러 진주빛 다이아몬드들을 뿌려 놓은 것처럼 그
친구는 '당신 생일을 위하여 이것을 주겠소. 이 도시 전체는 당신의 것이오" 하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상에 내려보낼 때 이와 똑같은 얘기를 귓속말로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예수님은 확실히 모든 것에 대해 주인의식을 보여 주셨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와
나귀, 최후만찬장으로서의 다락방, 결혼식장의 포도주, 심지어는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으로
바치는 동전 등 그는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이 있을 때면 그것을 창조하기 위하여 신성한
주인의식을 사용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거지 왕으로 여기지는 않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필요로한 것들은 그가 섬기는 자들의 관대함과 자발성에 의하여 여러 차례 제공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인의식이 그에게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유명한 소설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설가의
친구가 그에게 더 이상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래?'라고 소설가는 술에
취한 눈을 어슴프레 뜨면서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그래, 어니스트. 솔직히 말하면 너는 고향에
와서 나의 음식을 모두 먹고, 나의 모든 포도주를 마시며, 갖은 심부름으로 일하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야. 게다가. 사실 나는 네가 내 아내를 쳐다보는 눈길을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 소설가는 놀라움과 혐오감으로 말을 내뱉었다. "알았어. 그런데 도대체 친구라는 게
뭐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1: 28)
@p59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고개를 들어 네가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라. 네 눈에 비치는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창세기 13: 14)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로 자신을 묘사하셨다. 비유의 내용은 포도원을 돌보라고 보내어진
'포도원지기(Husbandman)'였다 예수님은 온세상과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책임감,
유산, 그리고 자신의 운명으로 간주하셨다. 그는 모든 우주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불렀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자신의 처신을 취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소유한 모든 것은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은하계, 새로 태어난
모든 양들, 그물에 걸리는 모든 고기 등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예수님의 것이었으며,
예수님은 그것을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그것을 주인으로서 소유하셨다:
만약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이름으로 쓰여진 하늘의 '행실'을 똑똑히 볼 수만 있다면, 만약
우리가 그것을 연구하여 마음으로 우리의 유산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무언가 다르게
살게 될 것이다. 아마 훨씬 온유하게, 더 큰 확신과 힘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이 은혜의
선물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예수님은 '주인으로서 소유하셨기' 때문에 힘을 가지셨다.
Question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살펴볼 때, 당신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소유하고자 애쓰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것을 참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까?
@p61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는 것을 막대한 에너지가 새어 나가는 일로 간주하셨다. 예수님은
정죄하러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도와주러 왔다고 여러 차례 선언하셨다. 그는 단 일분도 무엇을
파괴하는 일에 허비하지 않고 그의 에너지를 창조와 복구에 사용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이 몹쓸 종아, 나는 바로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벌주겠다." (누가복음 19: 22)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요한복음 5: 45)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책무를 알고 계셨고, 우리들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셨다.
정죄는 진전을 가로막는다. 우리가 리더로서 남을 정죄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진취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남을 정죄할 때, 우리는 우리를 앞으로 향하게 하는
에너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다.
@p62
때때로 우리는 남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처럼 무의식 중에 남을 정죄하곤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1: 21~22)
당신 자신의 진취적인 활동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쏟아라.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질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심지어는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도,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가 숨을 거두기
전에 진리를 인정하고 보았기 때문에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23: 43) 예수님은 "형제여, 나는 고향으로 가네. 당신도 나의
아버지를 만나기를 원하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는 데 그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으셨다.
Question
남을 정죄하는 데 당신의 에너지가 허비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죄하기보다는 지원하기 위하여 당신은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