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장수는 운명이 아니다

거룩한씨 성동 2005. 9. 15. 21:53
장수(長壽)는 운명이 아니다.


박상철(朴相哲)서울대 의대 교수가 주도하는 체력과학노화연구소와 조선일보 취재진이 전국을 발로 누비며 150여명의 백세인(百歲人)을 인터뷰한 결과, 장수는 유전적 요인보다 생활양식이나 환경이 결정한다는 증거를 수없이 발견했다.


◆규칙적으로 일정량을 먹자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올해 초 발표한 일본인 남녀의 평균 수명은 각각 77.72세(남)와 84.6세(여)였다. 그러나 일본은 ‘병든 노인’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2000만명을 넘어선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5%인 100만명 이상이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인구로 추정된다.


박상철 교수는 “이제 오래 사는 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보편적인 추세”라며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 말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 거주하는 103세 윤근남 할머니의 밥상을 보면, 소식(小食)해야 장수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밥상엔 눌러 담은 밥과 된장국, 열무김치, 부추김치, 호박무침 등이 풍성하다. 윤 할머니는 “한창 일하던 젊었을 때보다는 적게 먹지만 여전히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말했다.


박상철 교수는 “나이가 들면 무조건 적게 먹는 것보다 젊었을 때보다 식사량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활동량이 줄어든 만큼 먹는 양도 줄이라는 의미다. 이미숙(50) 한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하루 두 끼를 먹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는 게 백세인들의 공통점 ”이라고 말했다.


백세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존재했다. 백세인들은 채소를 물에 데친 뒤 나물 형태로 만들어 먹었으며, 풋고추를 제외하고 생채소를 그냥 섭취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교수는 “데쳐 먹으면 조리 과정에서 나쁜 물질도 빠져나가고 채소 섭취량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세인들은 또 삶은 돼지고기를 즐겨먹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표적 장수지역인 제주도와 오키나와의 백세인들은 삶은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돼지고기를 삶으면 몸에 나쁜 지방이 상당부분 제거된다”고 말했다. 삶는 조리법은 굽는 것에 비해 발암물질 및 노화물질의 발생을 줄여준다. 조리 온도가 150도를 넘으면 발암물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움직이고 생각하라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사는 101세 이성수 할아버지는 현재까지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사무실에서 1㎞쯤 떨어진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올해 초까지 4㎞ 떨어진 고향 마을(장양리)에서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방을 보러 다닐때도 언제나 걷는다. 음식은 가리지 않으며 식사는 규칙적으로 한다. 담배는 피우지만 술은 안 마신다.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 체질 때문에 피했다. 사무실엔 성경과 부동산 관련 책들이 놓여 있다. 치매는커녕 기억력이 좋아 6·25 때 이야기도 술술 풀어냈다. “부지런히 걷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는 할아버지는 “앞으로 10년은 더 살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백세인의 평균 경제활동 기간의 경우, 남자는 75세, 여자는 72세까지 생업에 종사했다.


장수 마을이 중산간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운동량과 관계있다. 90년대 이전 우리나라의 장수 마을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해안 지역에 집중됐다. 특히 야산을 낀 해안 마을은 생선·해조류는 물론, 채소류와 잡곡류까지 골고루 섭취할 수 있었다. 또 해안 마을은 산간 마을보다 상대적으로 교통이 편리해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쉬웠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90년대 들어 공중보건의가 산골 마을까지 들어가면서 장수 마을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 교수는 등산을 최고의 장수 운동으로 추천했다.


치매에 걸리지 않은 백세인들은 성경·신문 등을 읽거나 자식들의 생일 및 조상들의 제삿날 등을 끊임없이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나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게 장수의 전부는 아니다. 한경혜(47)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가족 관계야말로 장수의 가장 중요한 변수 ”라고 말했다.


한 교수의 인터뷰 결과 백세인의 대다수(67.5%)가 며느리, 특히 큰며느리와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세인들이 며느리와 동거한 기간은 평균 42년이었으며, 최대 64년까지 시어머니를 모신 며느리도 있었다.


백세인들은 주로 “며느리, 이제는 밉지도 않아 ”라는 말로 고부(姑婦)간의 관계를 암시했다.


한 교수는 “고부 관계가 나쁘면 시어머니가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다”며 “적절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오히려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어느 백세인의 며느리는 “큰아들 제삿날에도 밥 한그릇을 모두 비우는 이기적 성격이 장수의 비결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安勇炫기자 justice@chosun.com )




전문가 진단

한국에 맞는 장수식단은 고유의 전통음식들
쌀밥 선호하고 김치·된장등 발효식품 필수


무병장수(無病長壽)는 누구나 희구하는 목표다.

그리고 음식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으로써 오랜 기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따라서 장수촌이라고 알려진 코카서스 산맥의 마을들, 남미 에콰도르 산골, 중국 신강성 등지의 식단들이 장수 식단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호적 부실과 인구 통계 미비 등으로 주민들의 장수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식단에 대한 신뢰도는 예전처럼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 발표한 각국의 평균수명을 비교하면, 일본·싱가포르·호주와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네덜란드 등의 북해지역 그리고 이탈리아·스페인·말타·모나코 등의 지중해 지역이 세계적인 장수 지역으로 꼽힌다. 따라서 최근엔 이들 지역의 식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일본 식단처럼 대표적 장수 지역인 오키나와와 타(他)지역과의 전통적인 식습관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장수 식단에 대한 일률적인 결론은 성급하다.


본 조사팀이 우리나라 백세인(百歲人)의 식습관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는 장수 식단은 우리고유의 전통 식단이었음을 밝혀냈다. 주식으로는 잡곡밥보다 절대적으로 쌀밥을 선호했고, 부식은 생야채보다 반드시 나물이나 무침 형태의 조리된 야채를 섭취했다. 또 김치·간장·된장·고추장 등의 발효 식품은 절대적인 필수식품이었다. 그리고 필요한 칼로리의 섭취를 위해 장수인들은 소식만 하는 게 아니라,활동량에 비례한 충분한 열량을 섭취했다.


따라서 장수인들의 특정한 기호 식품에서 장수 비밀을 찾고자 한 우리의 노력은 즐거운 헛수고로 끝났다. 우리나라의 장수인들은 극히 일상적인 전통 식품을 고수하면서 건강한 100세를 맞이한 것이었다.


실제 본 연구소가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 700여 종의 상용 식품을 대상으로 항산화·항돌연변이·항암·면역기능 증진 등의 효능을 비교한 결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섭취하는 음식들이 가장 우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전통 식단이 바로 장수 식단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장수 식품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朴相哲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