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파 강주관은 1946년생(60세) 으로 건장한 청년시절에 육군에 입대하여 1969년 국가의 부름을 받고 월남전에 참가하였다.]
저는 1970년 월남 전투현장에서 고엽제(다이옥신)가 고여있는 수렁에 온 몸이 빠진 후 심한 두통과 40도가 넘는 고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고통 때문에 106 후송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온몸에 붉은 반점의 피부병과 뼈 마디마디가 쑤시고 신경이 무뎌지는 증세, 구토, 설사 등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피부병과 신경 계통의 질환은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귀국 후, 고엽제 후유증 증세가 더욱 심해져 일도 할 수 없었고, 가사는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기울어져만 갔으며, 몸은 점점 쇠약해져 고통과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서울대학병원, 삼성강북병원, 아산중앙병원, 서울보훈병원 등에서 중추신경장애, 요추 경추 신경(디스크), 신경근 장애, 다발성 신경 마비, 말초 신경염, 건선, 심상성 건선, 무좀, 위 십이지장궤양, 호흡곤란 장애 등의 병명의 진단을 받고 계속 치료를 받아 왔으나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지가 굳어가는 증세와 고통으로 인해 절망을 느꼈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허리와 다리에 마비가 와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고 점점 통증도 심해졌습니다. 허리와 다리에 힘이 오르게 하기 위하여 하루 열 시간 이상을 서서 서예를 쓰곤 했습니다. 팔꿈치로 상체를 받치고 쓰노라면 몇 번씩은 쓰러지고 주저앉고를 반복해야 했고, 붓을 화선지에 떨어트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포기 하지 않고 병마와 싸워 이겨 아름다운 글씨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붓을 든 지 30여 년이 되어가고 있고, 좋은 말씀을 아름답게 써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이웃 사랑하며 사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치의 병 고엽제 후유증은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언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갈지 모르는 불안감에 늘 쫓겨야 했고, 매일매일 한 주먹의 약 혹은 주사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2004년 10월 어느 날 옆집에 사시는 누님처럼 지내시는 분께서 알즈너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족문을 찍어보니 평발인 저의 건강 상태는 매우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2주 후 알즈너를 받아 착용하고 열심히 걸어 다녔습니다. 3일이 지나자 몸이 나른하고 몸살이 나서 4일간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몸이 가벼워지고 피곤이 많이 없어져 기분이 좋았습니다. 허리의 고통이 줄어들었고, 허리와 다리에 힘이 오르며 걸을수록 힘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구토 증세도 생기고 콧속이 헐기도 하고 콧물이 쏟아지고 열이 나기도 했습니다만, 잠자는 시간 외에는 알즈너를 매일 착용하고 다녔습니다. 4개월이 지난 후, 허리와 다리 모두가 반듯하게 잡히면서 유연성이 생겨 책상다리 정좌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다리를 무릎위로 올려 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위장병, 십이지장 괴양도 좋아져 약을 거의 줄이게 되었고 수 십 년 된 무좀도 없어지고 허리, 무릎, 목에 통증도 살아지고 심상성 건선 피부염도 점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알즈너의 효과를 저는 200%이상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의 건강은 많이 좋아졌고, 붓글씨를 더 많이 써서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알즈너 김 남 규 회장님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